3. 봉헌을 위한 33일간의 준비
1) 일정표
2) 33일간의 봉헌의 의미와 중요성
우리 가톨릭 교회에서는 봉헌(奉獻)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봉헌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느님께 바침으로써 하느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행위인데 이때 봉헌의 대상, 즉 봉헌을 받는 이는 하느님이시다. 봉헌의 대상은 오로지 하느님뿐이며 하느님만이 우리의 전적인 봉헌을 받으실 권한을 갖고 계신다. 따라서 봉헌은 자연적이고 세속적인 용도가 아닌 하느님을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며 하느님께 봉사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봉헌의 본질은 봉헌하는 이와 봉헌을 받는 이와의 인격적인 만남에 있다. 봉헌하는 이는 그 행위로써 자신을 온전히 열어 보이고 순종을 약속하고 봉헌을 받는 이의 소유가 됨을 인정하는 것이 되며, 봉헌을 받는 이는 바쳐진 봉헌물을 들어올려 자신의 소유세계로, 거룩함의 세계로 수용함으로써 그것을 거룩하게 한다. 그러므로 봉헌은 거룩함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며 하느님의 영역에로 들어올려 지는 것이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도약이다. 즉 하느님께 봉헌됨으로써 그것은 성화(聖化)된다.
구약의 이스라엘인들의 삶은 바로 이 봉헌의 삶이었다. 그들은 곡식이나 양, 염소 ,비둘기 등 동물을 제물로 바쳐 죄를 씻고 성화되고자 했으며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느님께 헌신과 충성을 다짐하곤 하였다. 예루살렘 성전을 지어 하느님께 바치고(느헤12, 27-43),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하느님께 온전히 바쳐 사무엘의 한평생을 하느님께 맡겨드렸다(1사무 1, 21-28).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아버지 하느님께 봉헌하셨다.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 19).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전 존재로써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행함으로써,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봉헌의 의미를 가장 충만히 채우셨고 그리하여 봉헌의 완전한 모범이 되셨다.
성모님 또한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루가 1, 38)라고 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헌신하는 데 주저함 없이 자신을 봉헌하셨다. 이 봉헌으로 말미암아 성모님은 하느님의 지극히 거룩한 궁전이 되셨다.
봉헌의 대상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그럼 성모님께 봉헌한다는 말은 과연 타당한가? 성모님께 봉헌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시며 천상의 여왕으로서 그리스도의 우주적 권능에 신비적으로 참여하고 계시며 그 영역에는 모든 인간들도 포함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께 봉헌할 수 있으며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 더욱 큰 성화를 가져오게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성모님께 봉헌한다는 말은 타당하다. 그리고 이 봉헌은 그리스도께 봉헌과 중복되지 않는데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님은 구별되는 두 줄기를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개하는 여인이 중개자와 병립되는 것이 아니고 성모님의 중개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중개에 종속되어 있을 뿐이며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봉헌하는 최상의 방법이 된다. 이것은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1673-1716)이 말하는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이다.
몽포르의 루도비코 성인은 하느님께 봉헌되기 위해서 하느님의 뛰어난 주형이며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님을 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성모님께 봉헌하는 것은 성모님의 손을 거쳐서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되고 그분께로 나아가는 가장 완전하고 안전하며 빠른 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완덕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께 봉헌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모든 신심 중에서 가장 완전한 신심은 그리스도를 완전히 따르며,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께 자신을 봉헌하는 신심이다. 모든 조물 가운데 마리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가장 친밀하게 일치하셨다. 따라서 모든 신심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예수님께 가장 잘 봉헌하게 하고 친밀하게 일치시키는 신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대한 온전한 신심이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봉헌하면 할수록 예수 그리스도께도 봉헌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완전한 봉헌은 마리아께 전적으로 봉헌하는 것 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가르치려는 신심으로서, 바꾸어 말하면 세례 때에 발한 서약과 맹세를 갱신하는 것이다.<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120항>
루도비코 성인에 따르면 이는 바로 성삼위 하느님의 표양을 따르는 것이 된다. "성부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만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고 또 계속해서 보내고 계시며, 성자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인간으로 탄생하셨고, 성령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고 그 신비체의 지체를 만들며 은총을 나누어주시기 때문이다."<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140항>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나, 그분께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나, 그분께 가까이 가기 위하여나, 그분께 무엇을 드리기 위하여나,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께 자기를 바치기 위하여나 항상 성모님을 중개자로 모시지 않으면 안 된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143항>
한편 봉헌은 세례성사의 갱신이다. 영세 때에 자기 입으로 혹은 대부 대모의 입으로 마귀와 마귀의 행실과 유혹을 끊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인 또는 최고의 주권자로 삼아 자신을 사랑의 종으로서 완전히 바칠 것을 하느님께 엄숙하게 맹세하였다.
마리아께 드리는 완전한 봉헌을 통하여서도 그와 같은 것을 우리는 행한다. 봉헌 기도문에 있는 것처럼 우리는 마귀와 세속과 죄악과 자기 자신을 끊어버리고 우리 자신을 마리아의 손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는 것이다. 아니 이 신심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 이상이다. 왜냐하면 세례를 받을 때에는 다른 사람, 즉 대부 대모의 입을 통해서 말을 하고 그래서 대리인에 의해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게 되나 이 완전한 봉헌으로는 우리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또 명백하게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례 때에는 적어도 명백하게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바치지 않고 자기 선행의 모든 가치를 예수 그리스도께 전부 바치지 않으므로 세례 후에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이를 적용하거나 자신을 위하여 보존할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봉헌을 통해서 우리는 마리아의 손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자신을 명백하게 봉헌하고 우리 선행의 모든 가치를 바치게 된다.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126항>
33일간의 정화과정을 거쳐 "악을 끊어버립니다. 죄를 끊어버립니다, 허례허식을 끊어버립니다"라는 순수한 자유의지에 의한 고백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남으로써 세례성사를 갱신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세례 때 받았던 아름다운 품위를 다시 회복하게 된다.